[뉴스의 맥] 막 내리는 '사우디 천하'…미국, 석유시장 주도권 쥐나

입력 2019-09-17 17:53   수정 2019-09-18 00:26

이상한 일이다.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이 드론 테러를 당했지만 세계가 조용하다. 최대 원유 손실을 냈다지만 시장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한때 19%의 상승폭을 보였던 유가도 서서히 원상복귀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미국 일부 기업이 이번 사고를 반기는 듯한 속내를 비치고 있다. 불과 10년 전 있었던 중동의 테러나 국지전과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난다. 원유와 에너지에 대한 ‘게임 체인지’가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주도권도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그 변화의 물결 중심엔 셰일혁명이 존재한다. 그 혁명의 파장을 직시할 때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주식시장은 전날 대비 0.5% 하락에 그쳤다. 이틀 전 사우디 동부 아브카이크 탈황 석유시설, 쿠라이스 유전 두 곳이 드론으로 테러 공격을 받아 사우디 전체 하루 원유 생산량의 절반이 사라졌지만 미국 시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테러 집단은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우디의 가장 핵심적인 산업 시설을 공격했다. 이전에도 드론 공격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직접적으로 산업 설비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격으로 사우디는 역사상 가장 많은 원유 손실을 입었다. 1973년 오일쇼크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보다 훨씬 큰 손실이다. CNN 추산으론 하루 570만 배럴이나 된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쿠웨이트가 피해를 봤던 430만 배럴보다 30% 많다. 하지만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유가는 한때 배럴당 63달러(서부텍사스원유 선물 기준)까지 올랐지만 하락을 거듭하면서 배럴당 6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사건 이전에 비해 10% 정도 오른 셈이다.


하루 생산량 570만 배럴 손실

미국 증시에선 이번 테러를 단기적 사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게 시설이 파괴되고 엄청난 규모의 원유가 사라져도 그냥 지나치는 형국이다. 그만큼 원유시장의 판도가 달라졌다. 5년 전만 해도 세계 석유시장을 쥐락펴락한 국가가 사우디다. 사우디는 석유의 잉여생산능력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다.

당장 석유 생산이 줄어들고 비축한 석유가 떨어지면 세계 경제에 일대 혼란이 생긴다.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이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미국과 이해관계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데이비드 코톡 컴버랜드어드바이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국 내 성장에 새로운 요소를 가미한 것에 불과하다. 경기 침체를 부채질하는 이벤트는 결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미국의 자신감은 최근 석유시장 구조 변화에 기인한다. 미국은 이미 원유 생산에서 사우디를 누르고 1등을 차지했다. 올해 6월에는 하루 기준 1200만 배럴을 생산했다. 셰일오일 덕분이다. 2년 전 셰일오일 생산업자들은 사우디의 감산정책에 맞서 증산을 시도하다가 유가가 내리면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기도 했다. 2015년엔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셰일업체들은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을 거듭하면서 이 고비를 넘겼다. 올해 초부터 미·중 마찰 격화와 더불어 세계 수요가 감소하면서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유가가 오르내렸다.

지금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업자들은 사우디의 손실로 유가가 올라도 증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셰일가스 시추업체인 파이어니어의 스콧 셰필드 회장은 “원래 계획보다 더 많은 리그(채굴) 장비를 추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휴스턴에 본사를 둔 생산업체 팔로마 LLC의 크리스 오실리번 사장도 “지금 석유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헤징(분산)함으로써 유가 상승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이야말로 원유시장에 의미있는 변곡점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원유시장에 의미있는 변곡점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은 세계 총 생산량의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수준을 그대로 지속하겠다는 게 이들 업체의 대체적인 공감대다. 이들 기업의 주식도 많이 올랐다. 불과 며칠 사이 파이어니어는 6%, 데본에너지는 12%, 휘팅석유는 49% 상승했다. 이번 공격이 세계 석유 공급에서 셰일오일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부각시켰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사우디도 원래 유가를 재정균형에 필요한 배럴당 80달러대로 설정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과감한 감산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 드론 테러 사태가 터진 것이다.

지역 문제냐 글로벌 문제냐

원유 수요는 세계적으로 침체 국면에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올해 남은 기간 세계 원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하루 평균 102만 배럴로 낮췄다. 8월 전망치보다 8만 배럴 줄었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가장 큰 이유다. OPEC이 쉽사리 증산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에너지 분야에 자급 경제를 이룬 미국은 그동안 세계 에너지 안보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미국의 에너지 안보정책에 따라 중동 지역의 해상무역이 이뤄지고 아시아 국가에도 원유가 공급됐다. 글로벌 분업 체계도 이런 안보 체제가 바탕이 됐다. 그런데 지금 이 같은 에너지 공급 구조상에서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은 원유의 91%, 일본은 62%를 그 해협(호르무즈)에서 얻고 있고 많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며 “왜 우리가 수년 동안 다른 나라를 위해 (원유 수송) 해로를 아무런 보상 없이 보호하고 있느냐”고 주장했다.

사우디에 대한 드론 테러 공격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났다. 테러집단들은 사우디의 약체화를 노린 것이다. 사우디의 손실은 심각하다. 재정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는 사우디가 해외에서 운용하는 자금을 회수하면 세계 금융시장에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유가가 올라도 원유 생산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 연기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직은 사우디의 석유 생산을 대체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셰일 생산이 세계 에너지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만 당장 수백만 배럴의 원유를 공급할 수는 없다. 사우디의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면 세계 경제에 큰 파장이 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원유 선물시장 모니터링 강화해야

이런 점을 고려하면 유가는 테러 공격 이전 가격으로 내려가지 않고 배럴당 60달러 수준을 유지하기 쉬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공급 제약에 따른 비용이 세계 제조기업을 압박할 수도 있다. 글로벌 무역구조에 변화가 생길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이다. 원유 수입의 74%를 중동지역에서 가져온다. 사우디가 28%를 차지한다. 유가 변동이 커지면 물가와 경제성장 등 거시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 구조다. 원유 선물시장에 대한 모니터링과 분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당분간 가격 변동성이 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우디 석유시설의 드론 공격에 대한 파장을 예의주시할 때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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